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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상념

24.03.18. 패스트 라이브즈

나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두 가지를 아쉬워해야 한다. 하나는 내가 바빠지는 것이고 하나는 내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글 쓸 시간이 부족해짐은 물론이거니와 질척하고 차분한 감상에 젖을 여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글감이 외려 줄어드는 스타일이다. 상대와 소통하거나 상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벅차다.
 
SZA의 Snooze라는 음악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 평소엔 대충 듣다가 가사를 곱씹으며 들으니 절절하고 달콤한 사랑 노래더라. 요즘엔 그 노래만 듣고 있다. 몇 달 전 캡처한 글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혼자서 잘 놀고 먹고 쉬다가 그걸 뚫고 오는 사람을 잘 봐라. 인연에 집착하면 악연이 되고 나에게 집중하면 필연이 온다.' 누군가 뚫고 오려고 하기에 관조하는 중인데 이 연이 이 생의 연이 아니더라도 다음 생의 연은 될 것 같아 소홀히 하진 않으려 한다. 이게 엊그제 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한 메시지이다. 
 
옷깃을 한 번 스치는데에는 5백 겁* 生의 인연이 필요하고, 부부가 되려면 7천 겁 生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한다(영화에서는 8천 겁이었는데...).
  *겁(劫) : 어떤 시간의 단위로도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 하늘과 땅이 한 번 개벽한 때에서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동안이라는 뜻이다.
 
영화는 이 생에 이루지 못한 인연에 대하여 다룬다. 맨 마지막 장면, 해성이 그랬다. "이번 생도 전생이라면, 다음 생엔 어떻게 만날까?" 나영이 답한다. "몰라?" 해성이 이 말을 끝으로 작별을 고한다. "그때 보자."
이 생에 7천 겁의 인연을 쌓지 못해 아쉽게 옷깃 부빈 사이로만 남은(남을) 사랑들아, 우리, 그때 보자.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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