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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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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이루지 못한 꽃은 외롭고 숲을 이룬 꽃은 시든다 티스토리에서 글 쓰다가 글이 날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네. 1차 분노 2차 체념 3차 해탈의 감정변화를 약 1분 동안 빠르게 겪고 다시 쓴다. 클로이가 엊그제 나보고 뭘 하면서 쉴 때 제일 좋냐고 물어서, 낮잠 자는 것이라고 했다. 1-2시간 동안 달게 낮잠을 자는 것. 생각만 해도 긴장이 풀리고, 여유롭고, 편안해지지. 하지만 막상 낮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아 낮잠을 자주 자진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쉼의 방식으로 잘 쉬지는 못 하는 것인가?... 제일 좋아한다고 하기엔 빈도수 이슈로 탈락시켜야 할 것 같다. 다시 생각해봤다. 그때 대답할 당시엔 글쓰기가 너무 뻔해서 패스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글쓰기가 답이다. 글을 쓸 때 내가 제일 나 다워지는 것 같아. 다채로운 표정도 제스쳐도 ..
다행인 사실 : 아무리 밤이 춥고 길어도 일단 자고 일어나면 밝은 아침이 되어 있다는 것
2015년 혼자 캐나다 몬트리올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국제영화제가 하고 있었어. 한국 영화가 하나 출품되었다고 해서 보러 갔지. 기억도 하기 싫은 여혐으로 범벅된 영화. 그런 영화에도 캐나다인들은 기립박수를 치더라. 끝나고 나오니 밤이었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난 우산이 없었거든. 그런데 그 영화관 앞 거리가 온통 펍이었어. 그중에 라이브로 공연을 하는 펍으로 뛰어들어 갔지. 옷에 묻은 빗방울을 털고 있으니까 제일 바깥쪽 테이블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불어로 말을 시켰어. 영어로 대답하니까 할아버지는 영어로 답을 해줬는데. 할머니는 불어밖에 할 줄 모르셨어. 할아버지가 혼자 왔냐길래 그렇다고 하고, 잠시 고민한 뒤에 같이 앉아도 되냐고 물어봤어. 흔쾌히 허락하시더라. 그래서 비 내리는 밤 몬트리올 펍에서 ..
경험이라기엔 너무 잔인한 것들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들 별 일인 별일 아닌 것들 얻은 것에 비해 잃은 게 너무 많은 관계들내가 건너야 할 다리는 위를 향해 있어 건너려면 올라야만 했다. 나는 겁이 너무 많아서 무서움에 온몸이 떨렸지만 그 다리를 건너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럼에도 나는 응원단이 필요했다. 다리를 올라가는 나의 엉덩이에 대고 힘내라고 소리치고 내가 혹여 떨어지면 받쳐줄 수 있는 타인을. 그래 그런 역할이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여러 번 바뀌길 바라진 않았다. 들리는 목소리가 수어번 바뀌었다. 침묵이 흐르는 시간도 길었다. 나는 여전히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다리를 건너고 있고 이제는 내가 너무 높이 와서 아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지 그저 아무도 없는 건지..
도망간 사람 잠수이별은 법으로 금지해야 해. 특별형법으로 규정해서. 징역형은 좀 그렇고 벌금형 정도가 좋겠다. 아무 생각 없이 네이버에 잠수이별이라고 쳤더니 나오는 블로그들이 하나같이 주옥같다. T들도 F들도 만족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도 다정한 위로들... 온라인 세계에서 익명 같은 것(때론 실명이어도 직접적인 네트워크가 없으면 익명 마냥 행동하는 것들이 있지)에 기대어 책임감 없는 일도 많이 일어나지만, 불특정 다수를 위한 위로도 많이 존재하는구나. 앞으로 힘든 일이나 나쁜 일 겪으면 꼭 인터넷에 쳐봐들. 됐고, 도망간 너에게 앞으로 사랑이 가득하기를. 도망갈 수조차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사랑을 만나 그 사람에게 줄 없이 묶이고 창살 없이 수감되어 오도가도 못하며 그 사랑에, 한 사랑에 충실하기를.
도망치기 나는 나의 사랑이 소멸되었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나의 사랑 호르몬이 더는 분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그래서 사랑의 유효기간이 약 3년이라던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충실하고 나와 특별히 잘 맞았던 나의 전연인 M을 무참히 버렸다. 그리고 M은 향후 내가 하는 모든 사랑이 다 실패하기를 기도하였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그 이후의 네 번의 연애를 전부 실패하게 된다.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M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용서한 지 오래라고 했다. 그러면 실패는 누구 탓인가? 나는 나를 미워할 수 없어, 연민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덮었던 이불은 버렸다. 누구와의 추억도 없는 새 이불 안에 파고 들어갔다. 웅크리고 바디필로우를 안으니 제법 따뜻하다. 솜 동굴 안에서 M 이후의 네 명의..
공지사항 내 블로그엔 카테고리가 두 개다. 그중 토막글은 내가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쓴 글로, 픽션이 섞여 있다. 서퍼도 그렇다. 그러니까 내 글에 나오는 ‘너’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그것은 저를 거쳐간 모든 사람의 총합이자 그 누구도 아닙니다. 그리고 너는 더더욱 아님.
서퍼 눈을 감으면 심장 박동에 맞추어 어둠이 파도를 친다. 어지러움 속에서 너에 관한 기억 편린 하나를 서핑보드로 삼는다. 편린에 엎드려서 어둠을 헤엄친다. 기억 속에 상상을 덧붙여 멀리 나아간다. 계속 손바닥 노를 젓는다. 제일 아픈 순간일까, 제일 행복한 순간일까. 고통과 기쁨은 희열이 있다. 가장 높은 희열의 파도가 거세게 밀려든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파도를 잡아 타고 부러 애쓰지 않고 나아간다. 균형을 잃지 않고 집중한다. 빠르게 강하게, 회상인 듯 상상인 듯 한 장면들을 헤집는다. 나는 오늘 밤 surfer이자 suffer가 된다. 파도가 사그라들면 나도 그만 보드에서 내려와야 한다. 한바탕 검은 파도타기가 끝나고 하얀 물보라가 일어났다 사라진다. 심장 박동이 느려진다. 느껴지지 않는다. 어둠이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