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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상념

25.01.13. 화분에 물을 주며

우리집에는 내가 첫 자취를 시작했을 때부터 기르는 화분이 하나 있다. 열흘에 한 번 물을 준다. 까먹을까봐 매달 10일, 20일, 30일에 준다. 너무 많이 자라면 내가 손으로 줄기를 뜯어 가지치기를 한다. 색이 노랗게 변한 줄기만 뜯는다. 창가에 두고, 열흘에 한 번 물을 주는 것 외에는 전혀 돌보지 않는데도 싱싱하게 살아 나와 3년을 함께 하고 있다. 인형 하나에도 이름을 붙여주면서, 이상하게 얘한텐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1월 10일에는 까먹고 물을 주지 못했다. 1월 12일에 물을 줬다. 싱크대에 화분을 갖다두고 물을 흠뻑 적신다. 흙에 먼저 물을 담뿍 주고 흙이 물을 속까지 머금을 동안 이파리에도 물을 준다. 1월 12일 일요일, 세탁기에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화분에 물을 주며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나는 이 집에서 바라보는 일출 무렵의 하늘 색깔을 좋아한다. 곧 이사 가기에 이 풍경도 머지 않았다. 시간들이 지나간다.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가고, 해야 할 일은 계속 생긴다. 가진 게 많아질수록 두려움이 더욱 커진다. 그럴수록 내 본질을 잃어가는 것 같아. 나는 나를 무엇으로 나인지 확인할 수 있는가? 글쓰기 말고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있을 수 있었을까? 후회는 없고, 대신 아쉬움이 있다. 잘 모르겠다.

 

20대 초반에 그때 사귀던 애인과 서촌에 있는 와인바를 갔었다. 2층이었다. Honne 노래가 나왔다. 뭣도 모르고 마셨던 레드와인과 그 음악과 그 추위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내가 엄청난 작가가 될 것 같았다. 막연하게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예술과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국내에서는 혼자 미술관도 가본 적이 없다.

 

나는 이제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었다. 온갖 레이저와 비만치료제에 관한 지식만 늘어간다. 예술은 멀고 노화는 가깝다... 

 

성취를 할 게 없으니까 제일 가시적인 외모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성취는 더 골아프고, 가시적이지 않고, 오래 걸리니까. 그러고 보니 올해 따겠다는 자격증이 두 개다. 꼭 해냈음 좋겠다. 봐봐 할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