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유월이어서 비가 자주 왔다.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비가 오면 기온이 떨어져서 겉옷이 필요했다. 너는 꼭 겉옷이 없었고 나는 항상 자켓을 입었다. 널 위해서라도 입었다. 빗속을 자주 걸어 구두가 차라리 나았다. 운동화는 젖으니까. 내 엄지발톱은 하늘을 향해 자라 오래 걸으면 매번 양말에 구멍이 났다. 너와 1시간씩 걸은 날엔 양말을 뚫고 나온 엄지발톱이 신발에 닿아 뻐근하기도 하였다. 구두를 신고 오래 걸어 아킬레스건 쪽 인대가 조금 늘어나 아팠지만 티 내지 않았다.
그때는 십이월이어서 눈이 내렸다. 첫눈을 차 안에서 같이 맞았다. 눈보라를 맞으며 주유를 했다. 올 겨울에는 회사 점심시간에 밖을 나갔다가 길 한복판에서 맞았다. 그날, 점심을 같이 먹은 지인과 친구가 되었다.
나한테 상처받은 사람 두 명에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아 아프다고 어떻게 이 상처를 낫게 할지 모르겠다고 너는 어떻게 나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했냐고 무례하고도 싸이코패스 같은 질문을 했다. 늘 착했던 한 사람은 그걸 또 성의껏 대답해줬고, 다른 한 사람은 날 차단했다.
여름밤 나와 함께 비 맞으며 입 맞추고 싶다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감동적인 편지를 써 준 사람은 둘 있었다. 작년에는 2000년대처럼 발신자정보없음으로 새벽에 전화해서 내 목소리만 듣고 끊은 이도 있었다. 애틋함이 어른거리는 눈빛을 외면했던 적도 있고,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눈빛을 내비친 적도 있었다. 나에게도 매일 밤 잠들 때까지 발마사지를 해주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밸런타인데이를 위해 기꺼이 한겨울 명동 길바닥에서 1시간을 기다려 디저트를 산 적도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묻고 바로 주문해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책을 묻고 읽어준 사람은 여태껏 한 명도 없었다(다음 운명의 복선일까?).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상형 KPI 46가지 중에 외모부문을 제외하면 전부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내가 부족한 점을 상대가 가지고 있길 바라진 않는다. 상호보완적 관계는 서로 반대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라, 다른 점을 포용하고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상대를 사랑하는지에 달려있다.
p.s.
로테도 결국 운명이 아니고, 클로이도 영원한 사랑이 아니라는 게 내가 이들 작품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후 ‘나’는 심리적 운명론을 좇아 그녀 없는 삶, 곧 생략도 받아들인다. 시간이 흘러 실연의 상처를 극복한 ‘나’는 사랑의 교훈을 깨닫고 어느 순간 다시 한번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 출판사 서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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