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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상념

24.01.07. A Patient Patient

뭔가 쓸 심과 신의 여유가 와병생활 일주일 만에 생겼다. 이제야 좀 부정적인 생각이 가라앉는 듯하다.
이번 사건에 관하여 떠오르는 것들을 짧게나마 정리하자면,

1. 객관적으로 죽을 뻔했다. 제2의 인생을 얻은 것에 감사하자. 감사, 또 감사, 감사함이 가장 큰 교훈이다. 이만함에 다행인 줄 알자.
2. 서른 살에 부모님의 간병을 받으며, 나를 어렸을 때 이렇게 키우셨겠구나 느꼈다. 그리고 그분들께서 혹시 나중에 나 같은 처지가 되셨을 때 내가 받은 것들을 잊지 말라고, 미래의 나에게 미리 경고당한 것 같았다.
3. 난 진짜 오만했다. 나는 뭘 하든 승승장구하고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 인간이니까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나한텐 나쁜 일이 안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천만의 말씀, 나도 한낱 인간이었다. 위험하고 멍청한 짓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인간.
4.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나 자신의 완벽함에서만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불완전한, 실수한 나는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한 나는 척척석사•육각형 인재•지덕체미를 겸비한 나였다. 깨어지고 다치고 타인에게 의존하고 타인의 동정과 위로를 받는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고 첫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과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일들(내가 수습해야 하는 향후 몇 개월의 현생)이 믿기지가 않아서, 이따위의 ‘나’를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용서하고 인정할 수가 없어서 무너진 자아의 탑의 잔해들을 붙잡고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응급실 대기실에서 몇 없는 환자들과 엄숙히 앉아 통창 밖으로 새해의 첫 해가 뜨면서 파랗고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며, 차마 소리 낼 수 없어 속으로 길게 오열했다.
5. 2022년 말이었던가, 2023년 초였던가. 화장실에서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을 보며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소리 내어 울었던 때가 기억나. 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쌍한 또니. 그놈의 자기연민은 이제 관둬야지 했는데 또 이런 일이? 이제 자기연민 그만. 1.로 돌아가, 이제 뭐라고? 감사. 감사. 감사 !!!
6. 23년은 누차 언급했듯이 너무 다사다난했으니까 24년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음력으로 계산해야겠다. 아직 난 2023년임. 설 지나야 2024년임. 반박 시 새해 복 받음. 반박 안 할 시 새해 복 터짐.
7. 굳이 다시 정리하자면, 3.의 결론은 겸손이고, 4.의 결론은 불완전한 나도 내가 사랑해주자,가 되겠다. 사랑해, 나 말고 누가 널 이렇게 사랑해주겠니(셀프 가스라이팅?). 넌 장점이 많고 변화하고 성장할 줄 아는 녀석이니까 실수해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잘 배우고 넘어가자.
8. 인형 친구들아,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Luci, 테일이, 쭈둥이.
9. 내가 데리러 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Mercy도 좀만 기다려.